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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음 속에 사랑의 불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배우고 세상을 안타까워하며 사랑과 자비의 불길에 자신을 불태우는 좋은 인연들을 가까이 하도록 해야 한다.

톡톡힐링 발행일 : 2015-08-09

 

세상사람들은 모두 다 고통에 아파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은 말세라 세상의 어둠과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를 보고 애를 태우지 않는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으리라.

세상이 고통스런 이유는 인간들이 함부로 지어놓은 수많은 악연들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선한 뜻을 내어 세상을 축복하려 하지 않고 너무도 명백한 인과의 법칙을 외면한 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치려는 뜻을 내고 나쁜 원인을 지어 세상을 어둠과 불행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지은 대로 받게 된다는 사실을 바르게 안다면 결코 나쁜 원인을 지을 수 없다.

세상을 이루는 완전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 좋은 원인은 좋은 세상과 좋은 자기를 낳고 나쁜 원인은 고통스런 세상과 나쁜 자기를 낳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들은 이치에 어긋난 행동이 고통의 시작인지 모르고 순간적인 욕심과 편함에 혹해 잘못된 원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이 작은 잘못된 원인이 자신과 세상을 커다란 불행과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 이치대로 행하면 불행과 고통이 없다.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간다면 그는 모든 것과 조화되어 마음이 맑고 편해지지만 욕심이 앞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다면 그는 세상과 부조화하게 되어 고통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와 같이 잘못된 원인을 짓는 이유는 바른 이치와 진실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 부처님은 이를 무명이라고 하셨다.

인간이 선한 행동만 하지 않고 무명을 나타내는 이유는 하늘이 자신을 닮은 인간을 낳아 자율성과 불성(신성)을 부여하여 스스로의 책임과 행동아래 완성에 이르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성의 여린 씨앗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은 신을 닮은 자율성과 창조성으로 수많은 뜻을 짓게 되는데 이때 좋은 뜻을 내어 바른 길을 가는 자는 완성에 이르게 되고 그릇된 뜻을 내어 어둠의 길을 가는 자는 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처음 인간이 지니고 태어나는 불성의 미약한 싹은 아직 맑게 여물지 않은 여린 상태이기 때문에 삶을 통하여 수많은 뜻을 내는 가운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무명인 것이다.

즉 무명은 마음이 여린 상태의 인간이 자율적으로 짓는 행동이 자연의 이치와 어긋나 부조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완성의 길과 파멸의 길이라는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마음이 흐린 가운데 잘못된 원인을 지었을 경우 이를 반성하여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바른 원인을 계속 지어나간다면 그의 여린 불성은 더욱 맑게 성숙하여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며

잘못지은 원인이 자연의 이치와 부딪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도 개인의 탐욕과 사사로움이 앞서 이를 고치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은 더욱 어두워져 불행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소멸의 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늘은 인간이 모두 선한 방향으로만 가도록 고정시켜 놓지 않고 모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시되 바르고 선한 길을 행하면 완성에 이르고 그르고 악한 길을 행하면 소멸에 이르도록 하여 모든 가능성이 열린 완전한 세상을 마련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완전하다고 하는 것이며 하늘의 뜻은 한치의 어김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율성을 지닌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와 이를 책임질 의무가 있는 것이며 좋은 세상과 삶을 위하여 선한 길을 가야 하는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고통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현상으로 되어 있다. 모든 불행과 고통 뒤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과 고통이 찾아올 때 그 원인을 밝혀 이를 고치면 저절로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만약 잘못된 원인을 고치지 못할 상황이라면 그는 불행과 고통을 운명처럼 걸머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  자신의 고통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알고 보면 세상의 대부분의 고통들은 인간들의 탐욕에 의해 지은 이치에 역행하는 원인들이 쌓여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불행한 운명을 바꾸려면 먼저 진리를 배우고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마음이 욕망에 가득하고 길이 보이지 않는데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고자 한다면 그는 눈을 감고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인 것이다. 진리를 배워 마음이 욕망에서 벗어나고 밝은 지혜를 얻는다면 삶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먼저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데 도와주려고 한다면 오히려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것이다.

상대를 축복할 수 있는 바른 이치를 배우고 아는 범위 내에서 실천을 병행한다면 참된 공덕을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태어난 보람과 가치를 가지도록 각 개인의 인격을 완성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의 영혼을 성취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영혼을 스스로 지키고 키울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지 않고 단순히 물질적인 도움만 주거나 상대가 탐내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제공한다면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을 망치는 저주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대는 상대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들지 않고 같이 아파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참 좋은 질문이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한 마음의 보물이 없다면 그는 결코 정법의 길로 나아가 완성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축복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선근이 큰 자는 이웃의 아픔을 보고 사랑과 자비의 불이 일어 자신의 애욕과 사사로움을 모두 태워 완성에 이를 수 있지만 선근이 적은 자는 아무리 이웃의 아픔을 보아도 동정심이 들지 않고 아파지지 않음으로써 사랑의 불이 일지 않아 자신을 정화시킬 수 없으며 좋은 공덕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아파하는 중생을 보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나지 않는 자신을 안타까워하며 길을 찾고 있으므로 그 선근이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사랑의 불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배우고 세상을 안타까워하며 사랑과 자비의 불길에 자신을 불태우는 좋은 인연들을 가까이 하도록 해야 한다.

이들을 가까이 한다면 그대는 어느 틈엔가 그들로부터 동화되어 자신 속에 세상을 아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는 불법승 삼보에 대한 삼귀의례가 있는 것이다. 깨달은 이에 귀의하고 진리에 귀의하고 진리를 찾는 선한 인연 속에 귀의한다는 것이다.

좋은 인연은 가까이 하고  나쁜 인연은 멀리 한다는 것이 어느 곳에서나 철칙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 속에서 진실을 전하는 참된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고 좋은 인연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인연이 있어 수천년 만에 진실이 있는 곳을 만났으니 작은 인연이라 생각하지 말고 매일 이곳을 방문해 진리를 배우고 몸으로 체득해 자신의 마음 속에서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도록 하라.

바른 진리와 좋은 인연은 많이 보고 가까이 할수록 더욱 자신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인연이 익으면 이곳이 세상을 진리로 밝힐 수 있는 진원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질문]--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엇을 할지?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안들면 어떻게 할지?"..........

항상 이 홈페이지를 들르며 가슴에 뜻을 새기고 마음에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오늘 이렇게 마음을 먹고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고통에 대한 의문 때문입니다.고통의 본질과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원죄때문 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영적 성장을 위한 약이라고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세상과 사람들속에 있는 고통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갖는 원인을 제거할 방도를 알려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연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들지 않고 같이 아파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그것을 고칠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 진실의 근원(ginc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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